포이멘 9기 화요일 저녁반 - 온전한 순종 독후감 > 제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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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9기 화요일 저녁반 - 온전한 순종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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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지수
조회 465회 작성일 26-02-1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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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윗사람의 말이나 의견, 명령을 거스르지 않고 순순히 따름. 


온전하다: 결함이나 부족함 없이 전체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상태.


즉 온전한 순종은 모든 것은 드리는 순종, 모든 부분에서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성경과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배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가 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을까 항상 질문합니다. “온전한 순종 (Absolute Surrender)” 이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가졌던 기대는 “아,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을지 배울 수 있겠구나” 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긴 했습니다. 다만 “내가” 하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온전한 순종을 하는 방법은 없다고 가르쳐 줍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26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부자청년이 찾아온 이후 제자들에게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짐을 알려주시는 말씀이지만, 순종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온전한 순종은 말 그대로 모든 삶의 순간, 말 한마디와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고 보면 온전한 순종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수준이 바로 그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수준의 순종이 바로 온전한 순종의 완벽한 예시 입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완벽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충분한 순종은 없다” 라고 도전합니다.


예수님 수준의 순종은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안에는 각자의 “자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늘 “나”라는 존재가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저도 온전한 순종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나의 자아와 하나님이 동시에 나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나를 부인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온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의 자아를 죽일 수 있을까? 구원이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듯 온전한 순종도 나의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에게 성령님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온전한 순종은 성령님을 받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가 하려고 하면 나는 무조건 실패하겠으나,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면 답은 해결됩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드리고 절대적으로 의존할 때는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입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문제, 너무나 복잡하고 막막한 문제는 쉽게 하나님께 떠넘깁니다. 반대로 내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을 때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습니다. 바로 내 자아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저는 실패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실패할 때, 저는 제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실패가 있기에, 우리의 무능함을 깨닫기에 도리어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내가 무능할 수록, 도리어 나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교제하게 되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성령님을 받는 것만으로 온전한 순종이 유지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사역이 그럴 수 있고, 직장의 업무도 그럴 수 있습니다.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는 모든 부분들을 기도로 간구합니다. 새 직장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일들이 익숙해지면 다시 나의 자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더이상 하나님이 절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의 순종은 다시 반쪽짜리 순종이 됩니다. 저자는 갈라디아서 3장 3절을 통해 우리의 이런 모습을 질책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제가 “온전한 순종” 책을 읽은 후 가장 마음에 깊게 남는 말씀입니다. 제가 살아온 삶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도제목들이, 얼마나 많은 섬김이 성령으로 시작되어 육체로 끝났는지 돌아보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일이 육체의 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번아웃이 오고 방전됩니다. 제가 청년부 회장으로 섬겼을 때, 많은 청년부 지체들이 경고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청년부 회장하고 나면 다들 교회 떠난다.” 이런 이야기는 다른 교회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성령의 일을 육체로 해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의 노력과 시간을 제물로 드려 태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로 타고 있다면, 모세 앞의 떨기나무가 타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는 번아웃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시작한 일을 계속 성령으로 마무리하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님께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 공급이 멈춘다면 우리는 또 육체를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온전한 순종을 드리는 비결은 바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주님께 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먼저 성령님을 구하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 자아를 죽여 주실 것이고, 우리는 그 때 비로서 예수님처럼 온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습니다. “충분한” 순종이 아니라 전체 모두를 드리는 순종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인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의 글로 마무리합니다.


“만일 내가 뭔가가 되려고 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실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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